물 냄새에 섞여 희미한 꽃 냄새가 났다. 일제히 연꽃이 피어있는 물가는 연한 긴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면 꿈 속에, 눈을 감으면 잠 속에 빠진 것처럼 온 몸이 나른하고 향기가 가득해서 바른 정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이한 날이구나, 몽롱한 한켠에서 그리 생각했지만 자욱한 꽃향기 속에서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내도록 긴 꿈 속...
동이 터오기 전에 아들의 정인이 창문을 통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언궐도 천천히 아들의 침실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언예진이 준비된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던 그는 한참이나 문 밖에서 맴돌며 인내심이 바닥을 쳤을 때야 몇번 얕게 헛기침해 언예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아버지?" 얼마간 더 기다려야 할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아들은 바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은 지나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이런 날은 늘 안 좋은 일이 일어났기에 견평은 매장소 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이날의 외출을 삼가해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매장소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신이 아니라 확률의 문제입니다!" "그거 참 흥미로운 의견이군, 려강."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비류를 소환할 것만 같은 표정이라 려강은 소득없이 물러나 ...
임수의 어머니 진양 장공주는 특히나 엄한 어머니로 임수가 잘못을 했을 때 보아 넘기는 경우가 없었다. 태황태후의 철통같은 애정과 비호 아래 임섭도 진양 장공주도 임수의 몸이 상할만한 체벌은 하지 못했으나 그가 깊이 반성할만한 벌을 어떻게든 찾아내곤 했다. 진양 장공주에겐 기왕 소경우가 있었다. 임수가 정말로 큰 잘못을 했을 때 장공주는 귀한 황장자의 시간을...
린신은 그를 녀석, 이라고 불렀다. 처음 봤을땐 사람이 저렇게나 부풀 수 있구나 새로운 지식을 얻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업고들어와 별당에 두고 치료를 시작한 녀석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잘은 모르더라도 온 몸의 뼈가 거인이 손바닥으로 내려치기라도 한 듯이 다 으스러져 있었고 혈관이란 혈관은 다 터져서 근육과 피부 아래로 피가 고여 퉁퉁 부어 있었다. ...
금릉에 괴이한 병이 돌았다.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걸려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나 인체에는 해가 없는 것 같다는게 밝혀진 전부일 뿐 원인도 병을 고칠 방도도 아직은 아무도 몰라 사람들이 다만 괴이하게 여겼다. 금릉에 병이 돌기 시작한 후로 소택의 문이 닫혔고 그곳의 주인도 두문불출하였지만 원래도 몸이 병약하여 출입이 잦던 이가 아니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
이상하고 기이한 날이었다. 앞으로 걷고 있는데 발끝이 땅에 채이지 않는 것 같고 무언가에 머리끈이 걸린 것 같은, 연꽃이 피기 시작한 계절의 공기가 달짝지근하게 바짓단과 소매자락에 달라붙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날이었다. 오늘따라 소경염이 기왕부에 없었다. 드물고도 드물게 헛걸음을 한 임수는 역시 이상한 날이라 홀로 납득을 하고 몸을 돌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려강이 말했다. 안의원도 어지간해서는 려강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자넨 종주와 체질이 맞지 않으이." "아닙니다." "자네가 먹는 수족냉증약을 처방하는게 날세." "그럼 종주를 소택으로 모셔가야겠습니다." 안의원은 정말로, 려강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강좌맹 사람들이 그들의 종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소택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
정왕은 본시 정이 많았다. 지나간 시절의 금릉에는 온통 좋은 사람들 뿐이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정왕은 자연스레 정이 많고 여렸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그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금릉의 봄은 지나갔고 지금은 얼어붙은 금릉의 겨울에서도 정왕은 여전히 다정했다. 매장소는 그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포근하고 찬연했던 울타리를 잃고 정왕은 닻을 잃어버린 ...
어린 것은 그를 보자마자 싫은 얼굴을 하더니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쳤다. 소리가 안 닿을 정도로 아주 멀리 가지는 않았을테지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사라진 통에 함께 앉아있던 그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전하. 송구합니다. 저희 비류가 철이 없어서..." "나는 괜찮으니 신경쓸 것 없소." 일어나 인사하려는 것을 빠르게 걸어가 다시 팔목을 잡아 자리에 앉혔...
밀실을 달려온 정왕부의 사람이 다급히 매장소의 의원을 찾아 소택이 발칵 뒤집어졌다. 매장소가 밀실을 통해 정왕부로 건너간지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한낮에 밀실을 통해 그것도 정왕부로 가는 거라 오늘따라 비류도 동행하지 않은 터라 안의원의 채비를 기다리는 동안 소택 사람들의 애가 탔다. 그러나 정왕부에서 온 사람은 매장소의 의원을 급하고 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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