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린신이 있었다면 했을 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미쳤다고 하거나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했을 거다. 혹은 더 나은 또 다른 길이 있을 거라 그를 만류했을 테지만 매장소는 지극히 제정신이었다. 그는 늦은 밤에 너덜거리는 정신으로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 정오 즈음의 찬란하고 정결한 태양 아래에서 몇 번이나 생각한 끝에, 스스로 독을 마셨다. 가끔 린신...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는 종종 독을 마셨다. 독으로 이루어진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독을 삼켜야만 했다고 아주 뒤늦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후로 경염은 가끔 그가 어떤 생각으로 제 손으로 독을 마셨을지가 궁금했다. 때로 약이 독이 되기도 하고 독이 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경모하는 어머니를 통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경염은, 독약이라는 것을 알면서...
밀실의 문 앞에서 흐린 불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정왕이 손을 내밀었다. 매장소가 망설이다 정왕의 손으로 손을 올리자 단단한 손이 굳게 그를 잡고 밀실 밖으로 인도했다. 밀실과 달리 정왕부의 방안은 따뜻했고 정왕의 손도 뜨거웠다. "이쪽이오, 소선생." 매장소가 무사히 바닥에 발을 딛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놓은 정왕이 안채로 손짓하며 먼저 몸을 돌렸다. ...
젊은 황후는 현숙함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그 현숙함이 후계에 대한 걱정과 지아비의 출신모르는 양자에 대한 경계까지 덜어주지는 않았기에 열 일곱살이 된 정생에게 황제가 황자시절에 머물던 사저가 하사되었을 즈음에는 그를 향한 유무형의 공격들은 그가 어릴때보다 더 날카롭고 정교해져 있었다. 황제는 장성한 양자를 황궁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조정의 요구를 들어주긴 했지...
그 일을 우연이라고까지 우길 생각은 없지만 역시 고의는 아니었기에 소경선은 녕국후가 입을 맞춘 손바닥을 오랜시간 내려다보았다. 단순한 장난이었다. 그 장난이 이렇게 될 줄은 소경선 본인도 몰랐으니 아무도 몰랐을거다. 혹, 천하의 주인을 바꾼다는 그 기린재자라면 알았을까? 호부견자. 처음은 안 들리는 곳에서 했을 그 말이 이제는 소경선의 귀가 있는 곳에서도 ...
1. 군마를 제외한다면 임수는 마땅히 다른 동물을 키워본 일은 없지만 어머니 진양 장공주는 처녀시절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녀가 임가에 시집을 와 아이를 낳는 동안 그 고양이 역시 몇번이나 배를 불리고 풀어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진양 장공주가 키우는 짐승들이라 임수가 나서서 어르며 귀여워 하거나 먹이를 주어본 일은 없었으나 진양 장공주의 처소에서...
밀실을 오고가며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잊을 정도로 머리를 맞대고 계책을 짜고 장계를 뒤지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정왕은 매장소가 잠든 얼굴을 처음 보았다. 처음은 놀랐고 다음은 연이은 철야를 견뎌내지 못한 매장소의 병약함을 안쓰러워했다. 손을 내밀어 깨운 것이 몇번 그대로 두고 정왕부로 돌아간 것이 몇번이었다. 잠들어 있다가 깨어날 때 매장소는 ...
그때 정왕은 오랜만에 임수의 몸을 떠올렸다. 그보다 두 살이 어려 태어난 이후로 늘 정왕의 호흡이 섞인 공기로 살아온 임수의 몸은 정왕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그 몸에 정왕이 모르는 흔적이 없었고 정왕이 잊은 상처도 없었다. 가슴에 있는 점과 어깨에 남은 전장의 상흔, 어린시절 무릎의 상처와 활시위를 당기는 손가락의 굳은살부터 살갗의 색깔과 감촉까지 정왕은...
그날은 하늘에 새 한마리 날지 않는 청명한 푸른 날이었다. 헌주의 많은 것들이 금릉과 달랐지만 소경선은 헌주의 넓고 큰 창문만큼은 헌주에 온 첫날부터 좋아했다.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더 넓고 맑은 것만 같아 보였다. 소경선은 금릉에서 멀고도 먼 헌주까지 잊지 않고 날아든 조보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그에게는 까마득하기만 ...
"정왕 전하는 거짓말에 약하신 것 같습니다." 여느때와 똑같은 밤에 어느샌가 붓을 내려놓은 매장소가 턱을 괴고 그렇게 말했다. 달도 기울은 밤이었다. 그리고 매장소가 간혹 심술궂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말이오?" "예, 전하." "무슨 의미로?" "거짓말을 잘 구분하지 못하잖습니까." 정왕은 그의 책사 매장소에 대해 그의 어렴풋한 배경만 알 뿐 개인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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